명상이란 무엇일까요?


1.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다양한 정의가 있겠지만 제가 정의한 명상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정화와 치유 시간

2) 나를 깨닫는 시간

3) 깨달음과 참된 자유를 찾는 시간


제가 3가지로 정의를 나눈 이유는 일반인들도 명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인 사람에게는 정화와 치유의 개념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방법론 적으로 들어가면 가나선, 이빠사나, 요가 등 전통적인 명상법부터 음악 명상, 춤 명상, 향기 명상 등 다양한 방법의 명상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 명상법은 호흡 명상법입니다. 호흡 명상법은 다양한 명상법 중에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단순합니다. 본질은 언제나 단순합니다. 그럼 각 정의 별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1 정화와 치유의 시간

명상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정화와 치유의 시간'이라는 정의입니다. 명상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가장 기본은 호흡명상입니다. 이유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호흡을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호흡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낮과 밤, 빛과 어둠, 등 모든 것이 이렇게 양과 음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흡 역시 들숨과 날숨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입니다. 호흡을 통하여 세상과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정화와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호흡명상은 복식호흡을 기본으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고 알아차림을 통하여 복잡한 생각들에서 벗어나게 하여 긴장된 신체를 이완시키는 행위입니다. 호흡명상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하버드 의대의 허버트 벤슨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2 나를 깨닫는 시간

이 정의는 왜 명상이 '정화와 치유'가 되는지 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는 정의입니다. 명상을 통하여 고도의 집중 상태인 몰입 상태에 들어가면 바로 '진정한 나'를 체험할 수 있는 ‘근본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상태는 일상생활에서도 가끔 경험을 합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스포츠 나 게임을 할 때 시간을 느낄 수 없이 어느 순간 지나가버리는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감각과 시간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몰입 상태입니다. '진정한 나'를 느낄 수 있는 이 자리는 불교에서는 '진아'라고 말하고 저는 '근본 자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 나라고 의식하는 에고가 근본 자리에 들어가면 우리는 치유와 정화가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근본 자리의 치유와 정화를 비슷하게 경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주 깊은 수면 상태입니다. 우리는 아주 깊은 잠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한 것을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식의 나’ 즉 ‘에고’가 무의식을 지나 근본 자리까지 갔을 때입니다. 이때 우리 몸과 마음은 정화되고 치유되는 것입니다. 얕은 수면은 의식과 무의식 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도 피곤합니다. 이렇듯 명상은 근본자리를 경험함으로써 진정한 참나를 깨닫고 그로 인하여 치유와 정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명상이 끝나는 순간 서서히 에고 상태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매일 씻는 것처럼 항상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1-3 깨달음과 참된 자유로움을 찾는 시간

마지막으로 이 정의는 명상이라는 행위를 통하여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정의입니다. 깨달음과 지혜라는 것은 세상의 이치와 순리를 알게 되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얻게 되어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상태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즉 나를 아는 단계를 넘어 나와 타인의 관계, 나와 세상의 관계까지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대부분의 괴로움은 나에게서부터 시작해 타인과 세상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 자리를 깨닫는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나를 경험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고 이후 자신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다음에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2.명상의 효과

명상을 어느 정도 단계까지 하면 나타나는 효과들이 있습니다. 우선 주변 시선과 외부 자극에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됩니다. 즉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집중력이 높아지고 통찰력이 생깁니다. 집중력을 키우는데 명상처럼 좋은 방법도 없습니다. 또 고도의 집중 상태인 몰입 상태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관하여 깊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명상을 중요시하였으며 명상으로 키워진 통찰력을 발휘하여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죠. 또 많은 대학과 기업,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도 명상을 교육하는 것도 이러한 효과들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러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삶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있고 시간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흘러가고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의식의 나'를 멈추고 근본 자리에 들어가면 이 흐름과 하나 됨을 느낄 수 있고 이 흐름 속에 시간의 흐름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도 함께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치를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지혜,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강줄기를 역행하면 고통스러운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이치를 모르면 삶이라는 거대한 강줄기를 역행하는 것과 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하여 통찰력을 키우고 삶의 이치를 하나씩 알아간다면 삶이란 거대한 강줄기를 평안하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참된 깨달음을 하나씩 알아가고 배울 때마다 우리는 진정한 자유로움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3.현대사회에서 명상이란

우리는 왜 명상을 해야 할까요? 과거 사회에서 명상을 하는 이유와 현대사회에서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다릅니다. 그리고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과거 사회에는 깨달음, 진리 이런 것을 찾기 위해서 명상을 했다면 현대 사회에서 조금 다르죠. 명상이 현대 사회에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언제일까요? 저는 스티브 잡스가 명상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명상이라는 키워드가 가진 편견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러고 보면 스티브 잡스는 많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줬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매스컴에서 명상을 소개할 때 많이 잡는 프레임이 스트레스 해소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분명 명상은 스트레스 해소의 효과가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업무 효율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입니다.


현대인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또 그중에서도 경쟁을 통하여 선택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런 생존을 위한 부분에 명상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경쟁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좋은 수단입니다. 단지 나쁜 것은 경쟁이라는 키워드속에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격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결과물을 만들어 경쟁을 하고 만약 졌다면 타인의 결과물에 승복할 줄 알고 그 속에서 배움을 가지고 다시 성장하는 이런 성숙한 인격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성숙한 인격이 없는 상황에서 경쟁 속으로 뛰어들고 떠밀려 살아가다보니 실패와 패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보다 타인을 시기하는 쪽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게 더 쉽기때문입니다.

암튼 다시 말하지만 명상은 이런 현대사회에서 업무 효율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힘과 성숙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큰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왜 명상이 업무 효율성을 최상으로 끌어올 릴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은 높은 집중도를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상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대한 집중하여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많은 단체나 기관에서는 명상을 상처 치유와 관계 개선 등 테라피 쪽으로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키우는 것보다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유도하고 그 속에서 치유를 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도 명상을 훌륭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아프기 전 예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상처 치료에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에 강해질 수 있도록 명상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 접근해야 명상 관련 기관이나 단체들도 건강한 명상문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집중력 다음으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흔들리더라도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는 자가회복력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사소한 일들에 하나하나 흔들리다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고 흔들리더라도 빨리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명상은 이런 마음 상태와 자가회복력을 키워주는데 탁월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현대사회에서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높은 업무 효율성을 위한 집중도 향상과 성숙한 인격 형성에 큰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4.명상의 원리와 단계


명상의 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하나의 생각이나 행위에 집중하여 불필요한 생각을 내려놓고 고도의 집중 상태인 몰입 상태로 들어가 근본 자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집중'입니다. 간단하죠? 명상은 무척 단순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사여구를 붙이고 방법론을 만들어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생각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몰입 상태란 의식이 있지만 의식이 멈춰져 있는 상태를 말하며 내가 몰입 상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은 몰입 상태가 끝난 뒤 시간의 왜곡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량 1시간을 명상했는데 10분처럼 느껴진다거나 10분을 했는데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시간의 왜곡을 경험합니다. 몰입 상태에서 집중하고 있는 그 마지막 대상조차 놓게 되면 그 자리가 근본 자리입니다.


수행에는 각 단계별 우선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각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모래 위의 성처럼 불완전한 상태가 됩니다. 많은 상담사들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상처받은 ‘의식의 나’는 절대로 스스로를 이해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 자리를 먼저 깨닫고 ‘참나’의 입장에서 ‘의식의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여야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안내서는 근본 자리를 깨달을 수 있는 단계까지만 안내하고 있습니다. 근본 자리를 깨닫고 머무를 수 있는 것이 모든 수행의 기본이며 50% 이상입니다.

닫혀있는 물병 안에 오래된 물을 비우고 깨끗한 물을 채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물병 뚜껑을 여는 것이다. 뚜껑을 열지 않고는 물을 비우려 하고 깨끗한 물을 채우려고 해도 물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물도 닫혀있는 물통에 부으면 물통 표면이 젖을 수는 있겠지만 채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표면에 젖은 물은 금방 말라버립니다. 


이처럼 수행법도 기본 단계가 먼저 되어 있지 않다면 순간은 도움도 되고 공감도 되고 위로도 되고 하겠지만 표면에 젖은 물처럼 금방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물을 넣기 위해서는 물통 뚜껑을 먼저 열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수행에도 기본 단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명상의 기본 단계를 위해서는 '생각과 의식을 멈출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괴로운 생각과 마음을 멈출 수 있는 것.
슬픈 생각과 마음을 멈출 수 있는 것.
불안한 생각과 마음을 멈출 수 있는 것.
불필요한 생각과 마음을 멈출 수 있는 것.





5. 세상의 구조와 명상의 관계


5-1. 세상의 구조
세상의 구조는 크게 '자연'과 '인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 식물, 산, 바다, 날씨, 하늘, 우주 이런 것을 통틀어 자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연은 본질과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지만 인간은 '자아'라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깊은 곳에 자연과 같은 본질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이 자리가 근본 자리입니다. <그림 1>을 보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A 영역이 근본 자리, B 영역이 무의식 자리, C 영역이 의식 자리입니다. 그리고 D 영역이 자연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한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바로 타인입니다. <그림 2>와 같이 세상에는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함께 존재합니다. 타인 역시 나와 같이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근본 자리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결국 타인과 나의 근본 자리는 같지만 대부분 우리는 '의식의 나'로 살아가기 때문에 '타인'과 '나'를 구분하여 살게 됩니다. 인간은 처음 태어나면 본질에 가깝습니다. 이유는 무의식과 의식이 자리 잡기 전 아주 맑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과 교육을 바탕으로 의식과 무의식이 형성되고 점차 본질에서 멀어져 어느 순간 '의식의 나'로 살아가게 됩니다. '의식의 나' 즉 ‘에고’는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의식의 나' 그 자체는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의식의 나'는 생과 사, 늙어감과 병듦, 기쁨, 슬픔, 행복, 고통 등의 감정과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5-2. 명상을 한다는 것
명상을 한다는 것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의식을 멈추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음을 얻거나 진리를 찾는다거나 이런 목적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목적 자체가 또 다른 의식의 틀을 만들어 버립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명상이란 불필요한 생각을 일으키는 의식을 멈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의식을 멈춤으로 인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가장 큰 것은 치유입니다. 의식을 멈추면 우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근본 자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자리로 들어가면 우리는 정화와 치유를 받기 시작합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게 되면 <그림 3>과 같이 무의식부터 점차 근본 자리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말은 무의식부터 점차 치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명상을 통하여 의식 영역까지 근본 자리의 영향을 받아 궁극적으로는 의식의 나가 아니라 참나로 살아가게 됩니다. 치유에 대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예가 깊은 수면상태입니다. 깊은 수면을 취하고 나면 우리는 몸과 마음이 개운한 것을 경험할 수 있죠.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근본 자리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얕은 수면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수면을 취하는 것이라 수면 중에도 의식 활동이 계속되기 때문에 많은 잠을 자도 피곤합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참나'도 '나'가 있습니다. 온전한 '참'이 아닙니다. 인간인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은 '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단지 '참나'로써 세상과 조화를 이루면서 얽매임 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이해할 수 있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최소한 감정적 문제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고 인간의 법칙이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은 자연 그대로의 법칙이지만 인간의 법칙은 인간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인위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법칙은 상충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최대한 자연의 법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의 법칙을 모두 알 수가 없을뿐더러 알더라도 인간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최소한 인간의 법칙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6.기존 종교와 수행법의 문제점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수행법들이 있고 종교인과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종교와 수행법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종교인들과 수행자들이 일으키는  잘못된 행동과 사건들을 통하여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훌륭하신 분들이 더 많지만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을 저지르는 종교인, 수행자들도 많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신의 감정, 욕망조차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망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슨 진리를 이야기하고 신을 대변한다고 할까요. 종교인과 수행자라면 저러지 말아야 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기존 수행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종교와 수행법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신, 진리, 깨달음, 이런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옆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면 신이고, 진리고, 깨달음이고 필요없습니다. 내 옆에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있다면 먹을 것을 건네는 것이 우선이고 아픈 동물이 있다면 치료를 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진정한 종교인과 수행자라면 신과 진리를 찾기 이전에 나와 타인, 나와 동물, 나와 식물, 나와 모든 자연이 둘이 아님을 먼저 깨닫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행자와 종교인들은 신, 진리, 깨달음을 찾기 전에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공감능력이 40% 라면 종교인과 수행자는 적어도 80~90%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공감능력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공감능력이 커질수록 공감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집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공감할 수 있고 작은 생명에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감능력이 높다면 그 안에서 진리도 알 수 있고 깨달음도 알 수 있고 신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과 종교라는 신비주의적 성격 때문인지 아쉽게도 일반인보다 못한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는 수행자와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공감능력이 없다보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지 못하고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 보거나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며 반말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건 사이코패스들이나 범죄자들처럼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특히 이런 수행과 종교 관련된 영역에서는 진리나 깨달음을 이야기하면서 스승이라며 제자들에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예의가 ‘도’는 아니지만 ‘도’를 이루면 예의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아직 누구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수행이란 자기 치유, 공감능력 키우기, 깨달음 찾기 순서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모든 수행의 앞에는 자기 치유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자기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 자리를 깨닫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 단계 없이 공감능력이 높다면 이것도 불행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 쉽게 휘둘리게 되며 결국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에게 이끌려가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근본 자리를 깨닫고 자기 치유를 통하여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인간의 기본값은 어둡습니다. 그리고 기본값이 어두운 인간들로 이뤄진 인간 세상의 기본값도 어둡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중심을 잘 잡고 밝은 지혜의 빛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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